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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Ephesians 5:9)

원천UBF 김성진.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모든 유대인과 같이 태어나셨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은 남들의 탄생보다 더 괴로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자기 모든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해 호적을 등록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셉은 유대 베들레헴이 고향이었습니다. 성경은 이곳이 "다윗의 동네"(2:4)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나사렛에서 유대까지 상당히 먼 거리를 호적 등록을 위해 이동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잉태한 마리아도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요셉에게나 마리아에게나 이 길은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실 때는 처음부터 고난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이 고난은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확신시켜 줍니다. 메시야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출발하셔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동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목자가 나올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은, 비록 황제의 목적은 자기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피하고 양 섬기는 데,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편한 것, 남들이 하는 것,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을 찾으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고난은 하나님보다 사람에게서 오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많습니다. 군대에 오니 사회에 있을 때와 차이가 있어서 여기서 오는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생각해서 고난으로 보지 않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마치 요셉과 마리아의 잉태는 고난이지만 예수님의 출생은 고난이 아니라는 식입니다. 제가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요셉은 고향에 왔지만 그곳에서 자기가 머물 곳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찼지만 여관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첫 아들을 낳았으나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구유는 말과 같은 가축이 여물을 먹는 데에 쓰는 그릇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화려한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 구유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이들의 부족함을 이해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으셨습니다. 겸손하고 온유하셔서 구유에 뉘이신 것을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닮지 못해서 남의 부족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구유에 뉘이셨는데 저는 못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닮아서 겸손한 사람이 되고 겸손함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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