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늘 하시던대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도하실 때에는 평상시와 달랐습니다. 기도는 때로 평상시에 드러나지 않는 영적인 모습을 드러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실제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대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광중에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모여서 대화를 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깊이 인정하시는 선지자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중심에 있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의 일부를 지금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말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인간적인 음모와 사악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에서 나온 중요하고 거룩한 사건임을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같이 깨어있어 기도하지 못하고 졸고 있다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자 온전히 깨어나고 모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떠나자 베드로는 겨우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9:33). 그는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예수님의 영광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진심을 자기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영광과 함께 하고 싶은 지극히 솔직한 영적인 소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하는 고난의 땅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싫은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있고 싶은 곳에 예수님을 데리고 가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확증하셨습니다.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9:34-36). 구름 가운데 소리가 들린 것은 모세의 때부터 자주 있던 일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쓰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고 여기에서 머물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전에,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고 물어야 했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이끌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싶고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이 이리로 이끌어 주셔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였는데, 이것은 우리의 성공과 실패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에게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이름을 팔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내가 좀 대충 해도 전도가 잘 되고 양들이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공부 좀 잘 되게 도와주셔야 되지 않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내가 가난한데 돈 좀 어떻게 떨어뜨려 주시면 안 되는가? 물론 모든 것이 중요하고 다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헛된 기대나 인간적인 소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우선으로 하는 우리 기도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영적으로 제가 구해야 할 것의 순서는 아주 명확합니다. 저는 제자로서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은 주님이 더하십니다.
세상의 것을 더 가지고 덜 가진 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심판자로서 저의 자리를 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제가 대학원 학업의 어려운 가운데에 있고 아직 장래방향에 대한 기대할만한 좋은 계획이 없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것도 역시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자기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묻고 순종하고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의 기이한 방법으로 저를 대학원으로 인도하신 것을 볼 때 주님이 저에게 주실 것이 분명히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저는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을 통해 이루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소원대로가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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