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본문은 엘리후의 네 번째 연설입니다. 여기서 엘리후는 자기가 가진 영적 지식을 활용하여 욥을 돕도록 합니다. 그의 자세는 완전하지는 않으나 다른 사람을 위해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목자의 자세에 가깝습니다. 엘리후는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욥에게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다시 잡도록 도와주고자 했습니다.
엘리후가 하나님에 대해 전한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고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의인을 항상 지켜보시고 존귀하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때로 의인이 고난 받을 때가 있습니다. 엘리후는 그 이유가 의인이라도 때로 악행과 교만한 행위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돌이키시기 위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세상에서 아무리 의인이라도 죄를 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의 다른 친구들보다 사람의 본질에 대한 파악이 정확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그가 때로 어려운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욥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죄를 더 많이 지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하나님의 때에 욥을 환난에서 이끌어 내시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시고 그의 상에 기름진 음식을 주실 것이었습니다.
엘리후의 위로가 욥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위로가 됩니다. 세상에서 얻는 모든 부당해 보이는 고난과 고통들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것들을 갑절의 선한 것으로 갚으실 준비가 다 되어 있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죄 가운데 물든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의 집과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세상의 즐거움과 같은 뇌물을 따라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욥은 분노하기 쉬웠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그의 아내의 말이 욥에게 큰 시험이 될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선한 뜻과 주권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 잘못하는 것은 사람의 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 것은 저에게는 저의 지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으려면 제가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단계를 하나님께도 적용시키면 이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잘못하시는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잘못하시는 것을 용서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분노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람과 같이 작게 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을 원하는데 자칫 이 관계성이 인간적인 관계성이 되면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계획을 생각하면, 제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제가 저의 합리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믿는 사람이 되어서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께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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