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내 하나님
어려운 시절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시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 중에서도 고난과 환난과 또 특별히 원수의 추적을 받는 상황입니다. 원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과 약간 갈등이 있고 약간 사이가 안 좋다고 해서 원수가 아닙니다. 자기를 죽이려 하고 어떻게 해서든 떨어뜨리려 하는 사람이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는 사울이 원수였고 또 왕이 된 후의 정적과 외국의 적이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다윗이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거나 떨어뜨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의 삶은 손해 보는 삶처럼 보입니다. 그 자신도 이러한 삶이 힘든 것을 잘 알았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헤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31:9-13). 그의 삶이 이렇게까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 다윗의 삶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이만 포기하고 세상 사람과 같이 서로 원수되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옿려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것을 이기고 더 성장하였습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31:14,15).
원수 갚는 것은 자기에게 있지 않습니다. 악한 일을 선으로 갚는 것은 단순한 비폭력주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에 기대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면 역시 선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악한 자에게 원수를 갚으십니다. 이렇게 될 때만 원수 갚는 일이 선한 것이고 자기의 힘과 손과 계획으로 사람에게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원수 갚는 것은 영화 같은 데에서 잘 나오는 통쾌한 주제입니다. 선한 사람이 복수의 칼날을 갈아 악한 사람을 처단하면 속이 시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이 악한 사람을 쳐잡아죽이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고 이러한 생각에서는 의로운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폭력과 살인과 악한 일이라는 본질적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심판은 주님께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기대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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