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본문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입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잘 살펴볼 때, 엘리바스가 생각하기에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했기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가 욥을 가리켜 부르는 말들을 보십시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22:5). 그리고는 욥을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빼앗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고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말하였습니다. 과부와 고아를 핍박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죄를 극구 부인하고 숨기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욥의 삶에 대해 무언가 알고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욥의 현재 상황을 보고 그의 내면을 추측하여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분명히 가난 때문에 하나님께 쓴 뿌리가 있을 것이고 그 문제를 도와야겠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실제적으로 어떤 실패를 겪은 사람이 있으면 그가 실패한 것은 믿음으로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불신에서 건져 회복시키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현재 모습을 보고 그의 삶과 내면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을 볼 때 사람의 상황과 당한 고난이 그 사람 자체를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한 사람의 내면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겉모습을 통해 속사람을 정죄할 수 있습니다. 혹은 겉사람을 가꾸는 데 치중하여 내면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간과할 수도 있습니다. 겉모습을 통해 신앙을 점검하려는 시도는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종종 실패로 돌아갑니다. 제가 겉모습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교회 생활의 모습을 보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남의 모습을 보고 부족하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초라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상황이나 그의 형편이 아니라 중심입니다. 중심이 하나님께 가는 신앙생활을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여기 저기 흔들리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허무감에 시달리고 인생에 회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상황과 형편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통해서 자기 신앙생활을 조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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